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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를 세우고, 돈을 벌고, TV에 출연하고, 책도 여러 권이나 썼
               으니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휘황한 도시의 누추한 변두

               리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손에 자란 내가 말이다.

                 어머니는 내가 네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 불굴의 의지로 두
               아들이 도처에 깔린 함정을 넘어 출셋길에 오를 수 있게 이끌

               어주셨다.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 작은 사례를 만드신 것이다.

               내가 아직 10대였을 때 아메리칸 드림은 전 세계가 상호의존관
               계가 되어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는 신념, 즉 ‘세계

               주의’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것은 당시 나라는 가난한 소년에
               게, 또 내가 장래에 되길 희망하는 성공한 남자에게 번영의 길

               을 열어줄 것으로 보였다. 세계주의는 관대한 길, 모두가 이길

               수 있는 게임으로 보였다.
                 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장벽을 낮추고, 고용하고, 건설하고,

               확장하자! 이미 성공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자신

               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세계주의
               에 마음이 끌린다. 나 역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세계주의에

               바쳤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그 시스템의 덕

               을 톡톡히 봤고, 전 세계 수억 명이 그 시스템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났다. 그러니 세계주의가 언젠가는 모든 사람에게 득이 될

               날이 오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으랴.

                 허나 아직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1999년 11월, 미국 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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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대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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