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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고 벌리 공원의 담을 넘기도 했다. 지극히 익숙하지만 계속 놀

               라움을 주는 자연 풍경들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당시 농장 노동
               자들처럼 클레어도 주로 고향 헬프스턴 마을 안에서 걸어 다녔
               다. 일부는 공공 도로를 이용했지만 대부분은 주민들만 아는 좁

               은 길로 다녔다. 클레어는 오솔길의 가치와 그 길을 다니는 자유

               를 중시했으므로 인클로저(영국에서 영주나 대주주가 목양을 위해 공유
               지에 담을 둘러 사유지로 만든 일—옮긴이)에 비판적이었다. 그는 〈마
               을 목동〉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예전에 자연의 자유 속에 길들이 있었지
                   예전에 모든 계곡을 에워 도는 오솔길들이 있었지
                   인클로저가 일어났고 모든 오솔길이 멈추었네

                   폭군 각자는 오솔길이 있던 곳에 간판을 세워

                   구내를 지나는 자들에게 침범이라고 알렸네


                 이 장은 고독한 장소이자, 혼자 있기라는 형태와 의미를 주는

               수단인 산책을 다룬다. 19세기는 도보 여행이 절정에 이른 시기

               였다. 어디서든 거의 전부 걸어서 생활했다. 부유층만 정기적으
               로 말을 탔고, 초부유층만 전용 마차를 타고 다녔다. 증기열차가
               승합마차 대신 등장했지만, 이전에 장거리를 걸어 다닌 이들은

               대부분 기찻삯을 감당하지 못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도시 교통

               체계 덕분에 걸어서 출근하지 않아도 됐고, 주요 도시들을 드나
               드는 기차로 인해 도보는 여가활동이 되었다. 멀리 떨어진 목적


                                                     ‘산책’에 관하여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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