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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거나 장보러 가는 일은 일상적인 평범한 활동이었다. 시골은

            집들이 분산되어서 살림을 하려면 먼 길을 다녀와야 하는 경우
            가 많았다. 시인 플로라 톰슨은 옥스퍼드셔 오두막에 살던 시절
            을 회고했다. “당시에는 무명실 한 꾸러미나 차 한 봉지, 푸줏간

            에서 일요일에 먹을 고기파이용 고기 6펜스어치를 사러 6~7마

            일(10~12킬로미터)을 걷는 것은 별일도 아니었다. 정해진 날에만
            오는 짐마차를 빼면 달리 외출할 방도가 없었다.” 대부분 마찻삯
            을 감당할 형편이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경우에는 써야 하는 비

            용이었다. 소도시에서 노동계층은 푼돈으로 생활했기에 매일같

            이 장을 보러 가야 했고, 덕분에 북적대는 집에서 잠시 벗어날 기
            회를 얻었다.
              18세기에 런던을 방문한 스위스인은 걷기가 가장 흔한 야외

            여가활동이라고 말했다. 다른 여가활동들처럼 도보는 본질적으

            로 다수의 활동이라거나 혼자만의 활동이라거나 하지 않고, 둘
            사이를 쉽게 넘나들었다. 도보가 개인 이동의 주요 수단이었던
            19세기에, 걷기는 각종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맺지 않을 기회를

            제공했다. 걸으면서 이웃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거나 집에서 벗어

            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목적 없이 거리를 산보하거나 시골길과 들판으로 나가는 일
            은 수세기 전과 다름없이 가장 손쉽고 널리 이용되는 여가활동

            이었다. 이것을 걷는 현대 철학자 프레데리크 그로Frédéric Gros

            는 “근심의 짐을 내려놓고 잠시 일을 잊고 짧게라도 걸으면 얻는
            ‘서스펜스 넘치는’ 자유”라고 묘사했다. 걷기는 집이 비좁아서 가


            38     1장|고독, 나 그대와 거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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