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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마자 피곤해서 씻지도 못하고 죽은 듯 잠들어버린다. 돈
                 만 있으면 살기 좋은 한국이란 나라에서 지명이가 씻고 자려면
                 돈이 얼마만큼 있어야 할까. 쉽게 행복해질 수 없음을 못 박아

                 버린 장면이다.

                   그런데 소설 속 지명이의 이야기는 남 일이 아니다. 편하게
                 살려고 많이 벌고, 많이 벌기 위해 더 일하고, 쥐꼬리만큼 남은
                 시간에 돈을 써서 편리함을 누리는 건 한국인의 전형적인 삶이

                 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이 상위권을 차지한다. 쉬

                 지 않고 벌어서 많이 써야만 행복해지는 현실은 절망적이다.
                   간소한 삶을 어렵지만 용기 있게 받아들인 이유이기도 했
                 다. 주말에 백화점 쇼핑을 안 한다면, 외식 몇 번 덜 한다면, 지

                 명이가 깨끗하게 씻고 나와 맥주 한 캔 곁들이며 수다 떨다가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지명이의 약속처럼 편하게 살
                 수는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많이 벌
                 어 많이 쓰기보다, 적당히 벌어 적게 쓰는 삶을 택했다.

                   덜 쓰는 삶을 몸에 새기려 연습했다. 일주일 동안 한 푼도 쓰

                 지 않는 ‘무지출 삶’도 시도해보고, 냉장고 파 먹기(냉장고 속 식
                 자재를 전부 쓰기 전까지 새로 장을 보지 않는 살림법)를 해보겠다
                 며 냉장고 지도(냉장고 속 식자재를 정리한 종이)를 그리기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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