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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나가 제 얼굴을 내 앞으로 들이댔다. 어우, 가까이서

                    보니 짜증이 팍 치솟았다. 하지만 고혜나의 말은 사실이었

                    다. 최근에 새로 처방받은 연고가 꽤 잘 맞는 모양인지 부스

                    럼도 많이 없어지고, 가렵다고 벅벅 긁다가 피를 보는 일도

                    줄어들었다. 덩달아 고혜나도 부쩍 온순해졌다. 내가 은근슬

                    쩍 ‘너’라고 불러도 모른 척 넘어가 주고 말이다.

                       “언니는 시간 안 돼?”

                       이모가 엄마에게 물었다. 도배사로 일하는 엄마는 요즘 집

                    근처 혁신 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로 휴일도 없이 출근하고

                    있다. 엄마가 이끄는 도배 팀이 아파트 한 동 전체를 맡게 되
                    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엄마가 그 일을 따내기 위해 얼마

                    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다.

                       “내가 팀장이잖아.”

                       엄마는 자기만 쏙 빠지면 팀원들이 배로 고생한다고, 그러

                    다 예정된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고객사의 신뢰를 잃고, 신

                    뢰를 잃으면 다음 일을 얻을 수 없고, 일을 얻지 못하면 돈을

                    못 벌고, 돈을 못 벌면 아파트 담보 대출금 이자를 못 갚을 거

                    라고 했다.

                       엄마의 상상은 한술 더 떠서 온 가족이 거리에 나 앉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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