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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이 골대에 맞거나 빗나
가는 상황을 많이 봤기 때문에 우월한 팀이라고 해서 항상 이기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스포츠는 오늘 우산을 가져갈까 말까 하는
일상의 문제에 더 가깝다.
반면에 정치인과 정당은, 특히 미국처럼 극도로 양극화된 양당체
제에서는 이런 사고방식을 수용하지 않고 유권자가 그런 식으로 생
각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들은 선거 승리를 도덕적 승리로 여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선거에서 이긴 게 나비형 투표용지, 선거인단, 물
가상승률* 등 우발적 요인이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 자신들이 ‘역사의
옳은 편’에 섰다는 증거, 심지어는 신의 의지가 자신들을 향했다는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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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모든 선거가 그 자체로 실존적으로 중대한
사건이라고 여긴다. 다시 말해 그 자체로 너무나 특별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그 결과가 기댓값 개념에 내포된 것처럼 여러 가능성 있는
결과를 포함하는 확률분포probability distribution에서 나온다고 보지 않
는다. 그리고 미묘한 차이, 복잡성, 다원적이고 확률론적인 사고가 끼
어들 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단일대오를 유지하는 게 워낙 힘들다 보
니 같은 ‘팀’ 내에서 논쟁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고 정치에
‘베팅’하는 것을 소름끼치도록 부도덕한 짓으로 취급한다. 30
나는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우리가 뒤에
서 더 정확히 정의해야 할 단어이기 때문이다. 철학계에서도 ‘합리적
rational’을 ‘이성적 reasonable’의 동의어로 보지 않는 것이 중론이다(이
* 내가 조사해보니 물가상승률, 실업률, 주식시장 등 경제적 요인이 대통령의 재선에 중요한 영
향을 끼치고 정작 대통령이 누구인가는 대체로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 경제
는 공급사슬 균열, 기상 악화, 노동쟁의, 전쟁처럼 외부에서 발생하는 충격에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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