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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인 제 친구가 보내준 문장이고, 그 친구는 이 문장을 “당신을 규
          정하는 것은 무능력이 아니고, 당신 앞에 놓여 있는 그 무능력을 어떻
          게 도전해서 잘 이겨내는가에 달려 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은 이 번역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제 친구
          도 이렇게 번역하고 흡족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disability를

          다르게 번역해 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 번역으로
          만족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자기가 알고 있는 뜻을 벗어나지 못한다’

          라고 말한 이유가 이해되십니까? 사전을 뒤적이면 disability에 ‘장애’
          라는 뜻이 보입니다. 위의 번역에서 ‘무능력’을 ‘장애’로만 바꿔도 전체
          적인 의미가 확 다가옵니다. 이런 이유에서 제가 번역을 ‘단어 맞추기’
          라고 하는 겁니다. 물론 제 친구의 번역에서는 disability만 아니라 전

          체적으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여기에서는 단어 이야
          기를 하고 있으니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합시다.
              이번에는 위키피디아에서 인용한 한 구절을 보겠습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약력이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He became reader in 1959, professor between 1970 and 1982 and an
          emeritus professor of history in 1982.



          눈치가 빠른 독자는 제가 무엇을 묻는 건지 이미 알아챘을 겁니다. 위
          의 문장에서 reader를 무엇이라 번역하시겠습니까? 가령 “그는 1959
          년에 독자가 되었고, 1970년부터 1982년까지는 정교수, 1982년에는

          명예교수가 되었다. ”라고 번역하면 어떻겠습니까? 좀 찝찝하지 않습니
          까? 독자 → 정교수 → 명예 교수? reader가 맥락상 어울리지 않습니
          다. 사전을 뒤적이면서 이 맥락에 적합한 reader의 뜻을 찾으면, 놀랍
          게도 ‘부교수’라는 번역어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쯤에서 하나의 원칙이 세워집니다. 여러분이 기존에 알고 있
          는 뜻으로 번역해서 그 결과가 어색하면, 어색한 결과를 만들어낸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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