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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서 궁금한 것들

               
          꽤 오래전입니다. 네이버에서 개인 블로그를 운영할 때 이웃들에게 번
          역에 대해 짤막하게 정의해 보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번
          역은 반역’이란 말처럼 기왕에 존재하는 정의는 삼가 달라는 부탁도

          곁들였습니다. 많은 이웃이 각자의 생각을 남겨 놓았고, 그중에는 ‘번
          역은 거울이다’ , ‘번역은 지식의 또 다른 통로이다’와 같이 그 뜻을 이

          해하려면 약간의 생각이 필요한 정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재
          밌고 기억에 남는 정의는 ‘투련수래이시온’(鬪–練–修–來–易–時–溫)
          이었습니다. 영어 TranSlaTioN을 기막히게 한자어와 연결한 정의였
          고, ‘연습하고 연마하기에 힘쓴다면 편안함과 때때로 따뜻함을 얻게

          된다’라는 설명까지 더해 주었습니다. 이 정의는 번역 자체만이 아니
          라 번역의 전후까지 담아낸 듯합니다. 번역가로 오랜 시간을 살아오
          며 제가 실제로 경험한 현상을 집약한 듯한 정의이기도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번역
          번역과 관련해 처음 출간한 책(2001년)에서 저는 번역을 ‘다시 쓰기’
          라고 규정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영어로 쓰인 글을 우리말로 ‘다시 쓰

          는 작업’이 곧 번역이라 한 것입니다. 그럼 이른바 ‘문법’이란 것을 완벽
          하게 알아야겠지요. 그런데 문법이란 게 무엇일까요? 저는 문법을 좁
          은 의미에서 접근합니다. 이런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식인 계급에

          속하는 철학 교수와 아무런 교육을 받지 못한 무학자, 둘 모두가 영
          어 사용자라면 서로 대화가 가능할까요? 철학 교수가 어려운 철학 용
          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둘 사이의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할 겁니다.
          대화가 가능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같은 문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

          다. 말하자면, 똑같은 방법으로 구성한 문장을 주고받기 때문입니다.
          이 둘 중 한 명은 무학자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영어 문법을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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