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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혼란스러운 고려 말기,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가 조선 건국 과정에서 기억해야 하는 사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1388년 ‘위화도회
          군’입니다. 우선 ‘위화도 威化島’는 압록강 하류에 있는 작은 섬의 이름입니다. 그리고 ‘회
          군 回軍’은 군대가 가던 길을 되돌린다는 것을 말하죠. 즉 ‘위화도회군’은 위화도라는 섬
          에서 군대를 돌렸다는 의미입니다.
          자, 그럼 조선이 세워지기 직전의 고려 말기로 한번 가볼까요?

          고려 말에는 당시 지배 세력이던 권문세족의 횡포가 심했고, 머리에 붉은 두건을 쓴 홍건
          적과 왜구의 침략으로 골치가 아팠습니다. 이때 최영과 이성계는 외적을 격퇴해 백성들
          의 지지를 받았어요. 또 당시에는 성리학을 공부하고 과거 시험을 봐서 관리가 된 ‘신진
          사대부’가 있었는데, 부패한 지배 세력을 비판하고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
          다. 이들은 이성계와 같은 신흥 무인 세력과 손잡고 고려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들어선 명나라가 이전에 공민왕이 회복한
          철령 북쪽의 고려 땅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시 고려 조정에는 여러 의견이 있

          었는데, 그중 최영은 명나라의 주장은 말도 안 되니 거절하고, 오히려 명이 차지하고 있
          는 요동 지역도 원래 고려 땅이니 이 기회에 요동을 정벌하자고 했습니다. 이 의견이 받
          아들여지면서 최영은 이성계에게 요동 지역을 정벌하라고 하죠.


             3. 강력하게 뜨는 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당시 지휘관이었던 이성계는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최영의 계획에 반대했습니다. 작은 나
          라가 큰 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 여름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적당치 않다, 요동 정벌을
          할 동안 왜구가 침략할 위험이 있다, 장마철이라서 활의 아교가 느슨해지고, 병사들이 전

          염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최영은 이성계에게 계속 요동 정벌을 지시했고, 이성계는 어쩔 수 없이 5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떠납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압록강의 위화도에서 이 명령을 듣지 않고 자
          신의 생각대로 군대의 말 머리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왔어요. 이것이 바로 위화도회군입
          니다. 그리고 우왕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9세인 창왕을 왕의 자리에 올립니다. 그리
          고 자신의 반대파였던 최영도 제거했습니다. 이후 이성계는 다시 공양왕을 왕으로 추대
          했고, 군사력을 장악하고 강한 권력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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