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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자만이 이 사실이 자살하려는 영혼에 위안이 되는 걸 안

             다. 자신이 영혼을 가졌다는 가당찮은 전제 하에 평생 끙끙대는
             게 얼마나 힘겨운가! 영혼이 없으면 사후 따윈 없고, 사후가 없

             으면 현재라는 무대만 있다. 자살? 어차피 곧 죽을걸 뭐. 80년,
             100년도 우주의 눈에는 찰나다. 살다 보면 결국 여기 없었던 것

             처럼 된다. 수치심이 인간이 만든 것임을 깨달으면 수치심의 독

             성은 힘을 잃는다.
               불멸의 존재들도 사라진다. ‘미켈란젤로’와 ‘셰익스피어’도 언

             젠가, 아마 노엘과 나를 갈라놓은 격변의 세월 이후에는 한낱 소

             리로 남으리라.
               약간 다른 맥락이지만 풍유 시인 도로시 파커는 짧은 시 <이

             력서>에서 “그러니 사는 게 나아”라고 말했다.



               면도날은 아프고
               강에 빠지면 젖고

               산酸은 얼룩지게 하고

               약물은 경련을 일으킨다.
               총은 불법이고

               올가미는 풀리고
               가스는 악취 나니

               그러니 사는 게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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