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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사후가 없으면 좋겠다. 내가 수천 년간 내가 아니라
면 더 좋겠다. 나라니? 아이구야!
— 윌리엄 골딩
깨달음은 사람마다 다른 형태로 온다. 성경 구
절. 연인의 눈에서 번뜩 지나가는 자각. 니체의 경구. 어느 소나
타 곡. 아이의 포옹. 시간이 멈추고 잠깐이나마 신이 존재를 드러
내는 심오한 순간, 세상이 이해된다.
내 경우 깨달음은 유인원의 손가락 관절로 다가왔다.
처음 만났을 때 침팬지 노엘은 생후 6개월로 막 남부 플로리
다의 보호시설에 들어온 참이었다. 거기서 다른 고아 침팬지 대
여섯 마리와 인간 돌보미들의 손에 양육될 터였다. 그러다 좀
크면 자연스런 환경에서 갇혀 살 테고. 그 운 좋은 돌보미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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