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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정에 자신의 죽음이 있다. 1909년 65세의 루소는 54세의

                  미망인 유제니 레오니에게 청혼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래도 그녀
                  를 잊지 못하고 비 오는 날 역까지 마중 나갔다가 비에 잔뜩 젖어

                  급성 폐렴으로 죽었다는 설과 아무리 해도 자신의 마음이 받아들
                  여지지 않자 자해를 반복한 끝에 상처가 곪아 죽음에 이르렀다는

                  설이 있다.






                  불우한 무명화가의 깜짝 성공 비결



                  독학자도 세속의 평가를 무시하기는 불가능하다. 루소가 국립미
                  술대전(살롱)에 번번이 낙선하면서도 작품을 출품한 이유는 성취

                  감뿐만 아니라 살롱 입선만이 무명화가가 단숨에 주목받는 유일
                  한 방법이자 그림을 판매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

                  운은 다른 곳에서 날아들었다. 루소가 그린 여인 초상화를 우연히

                  산 피카소는 거기에서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적인 힘이 담긴 화법
                  을 보았고, 자신의 화실에서 ‘루소의 밤’을 열었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 막스 자콥, 조르주 브라
                  크 등 당대의 전위 예술가와 수집가들이 참석했다. 이날 밤 피카

                  소가 루소에게 찬사를 바치자, 루소는 전설적인 대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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