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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해야 했다. 철길 옆이라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시끄러웠지만 괜찮았다.
비록 단칸방이었지만 신혼생활은 달콤했다. 남편은 형이 운영하는 플
라스틱 공장을 다니며 월급으로 80만원을 받았다. 그중 50만원은 저축하
고, 18만원은 월세를 내고, 남은 12만원으로 생활했다. 큰아들이 태어나
가족이 늘었지만 12만원 한도 내에서 알뜰하게 살았다.
그렇게 3년 정도 살았는데 일이 터졌다. 형 공장이 안된다며 남편은 보
증금을 빼서 형에게 주자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반대만 할 수도 없어서
그 알량한 보증금을 빼서 주고, 이모에게 생활비로 월 25만원을 드리며 이
모 집에 얹혀 살았다. 한 푼이 아쉬웠지만 만 24개월까지 아이 인성의
80%가 형성된다기에 꾹 참고 애만 보며 살았다.
2년 정도 이모 집에 있다 보니 더 이상은 염치가 없어 남편 형이 사는
광명 철산동으로 이사 갔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10만원인,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였지만 화장실이 안에 있어 좋았다.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다.
지하 단칸방을 전전하는 내 인생에 미래가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허리를 다쳤다. 공장 사정이 계속 안 좋아지며 월급
은 제때 못 받고 사람이 없어 일은 많아지다 보니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약
해졌다. 과로가 쌓이다 보니 금형에 허리를 크게 다친 것이다. 산재처리도
안 되고, 모아 놓은 돈도 없으니 병원이 아닌 집에서 요양할 수밖에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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