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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셨다. 사실 그 나잇대 청년이라면 친구들 만나기에도 시

           간이 부족할 만큼 바쁘지만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은 고모할
           머니를 뵈러 가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도 오슬로로 출퇴

           근하시던 몇 년 동안은 고모할머니의 소박한 원룸에서 주무

           시곤 했다. 형과 나는 고모할머니를 위해 식사 초대에 흔쾌
           히 응했고 고모할머니는 우리를 위해 요리를 하셨다. 오이

           샐러드와 사우어 크림을 곁들인 청어 튀김, 크랜베리 잼을

           곁들인 미트로프, 양배추, 통후추와 감자를 곁들인 삶은 양
           고기 등 평소에 맛보기 힘든 노르웨이 전통 요리를 만나는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70대 후반이었던 고모할머니
           는 형과 내가 성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셨는지 가끔 와인

           검(과일 맛 젤리―옮긴이)과 토피(설탕, 버터, 물을 끓여 만든 찐

           득한 제형의 사탕―옮긴이)가 든 간식 봉지를 들려 보내셨다.
           고모할머니가 기뻐하시는 모습에 우리는 축복 받은 느낌과

           안도감이 들었다. 고모할머니 역시 우리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행복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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