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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으로 정확하게 그은 국경이 등장한 것은 불과 수백 년밖에 되
지 않았다. 정치권력을 배타적으로 행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영토를 획정했고, 그 결과 국경으로 나뉜 두 지역의 교류를 통제
하기 시작했다. 권력 때문에 국경선이 그어진 후 지역이 분리되
고 상호 교류가 차단되면서 오히려 차이가 만들어지고 더욱 강
화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민과 국가의 정체성이 구성
되고 국가 단위의 제도들이 확립됐다.
그러나 국경은 소통과 흐름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쪽과 저
쪽의 다름을 보여주고 그 다름을 유지하면서, 예로부터 이어진
상호 교류와 소통의 기능을 담당해왔다. 실제로 그 대학원생의
머리와 마음에 새겨진 두만강은 우리가 생각하는 금단의 선이
자 차단의 벽이 아니었다. 비록 최근 들어 중국 쪽 강변에 철조
망을 치기 시작했지만, 그에게 어린 시절 두만강은 그저 누구나
들어가 물놀이하는 놀이터였고, 가끔은 강 건너 북한 쪽으로 마
실을 가서 감자를 삶아 먹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의 시선으로
본 나와 일행의 시선은 얼마나 독특했을까?
남한과 북한 사이를 가로지르는 휴전선은 말 그대로 전쟁을
멈추기 위해 그어진 선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이라는 영토 안에
서 아웅다웅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스스로가 처한 분단의 현
실에 둔감하다. 반면에 한반도 바깥의 더 넓은 세상에서는, 특
낯선 곳에 던져졌을 때 비로소 ‘나’는 발견된다_이영민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