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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특히 누군가에게서 받은 물건, 추억이 서린 옛 물건을 처
분할 때는 죄책감에 몸부림쳤다. 처분하는 요령도 주먹구구
식이었다. 만약 중고 거래 사이트마저 없었다면 지구에 갚지
못할 큰 빚을 질 뻔했다.
그로부터 2년 뒤, 20대 후반 젊은 유부남의 짐은 배낭 하
나로 완성됐다. 그 홀가분함도 잠시, 아내와 한국으로 와 임
시 거주지를 구하자마자 살림 및 잡동사니가 마구잡이로 불
어났다. 불어난 원인은 단순했다. 갖은 방법으로 물건은 처
분했지만 왕성한 물욕은 버리지 못해서였다. 거기에 새로 채
용된 여행 인솔자 직무에 맞춰 실무용품을 갖추느라 살림이
역대 최고로 많아졌다. 우리가 동시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
한 것은 이사할 때였다. 분명 가전제품은 빌트인으로 된 집
에 살았거늘, 무슨 짐이 그리 많은지 잡화점 하나는 우습게
차릴 정도로 물건이 더 있었다.
다시 냉정함을 끄집어냈다. 다행히 한 번 해 본 경험 덕에
빨리 짐을 정리할 수 있었다. 직업상 가방 한두 개까지 줄일 순
없었지만 충분히 홀가분하게 줄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
금까지도 물건 요요 현상 없이 세계를 안방처럼 누비고 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전기 轉機 를 두 차례 꼽자면 하나는 기혼
자가 된 일이고, 하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된 일이다.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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