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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상에 앉아 색을 찾아, 마음을 달래줄

                자양분을 찾아 눈알을 굴려봤다. 칸막이 없이 트여있는 사무실 공
                간은 온통 회색투성이에 자연광도 들지 않았다. 지겨웠다. 오늘은

                왠지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나처럼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웬일인가 싶었다. 나는 런던 자연사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 의 영

                국 및 아일랜드 식물 표본실 큐레이터다. 식물 표본실은 말린 식물
                의 표본을 모아놓은 곳이다. 이곳은 식물학자라면 경쟁자들과 몸

                싸움을 해서라도 일단 붙잡고 싶을 직장이다. 하지만 지겨웠다. 오

                늘 역시 그렇고 그런 날들 중 하루일 뿐이었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려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동료의 전화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동료가 아니었다. 반대편에 수화기를 들고 있는 사

                람은 범죄 현장 수사관이었다. 살인사건으로 의심되는 현장에 수

                사를 나가는데 시간을 내어 함께 가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강가에

                서 심하게 부패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했다. 남자의 신원은
                확인됐고 가족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같았다. 가족에 의한 살

                해가 의심스럽지만, 남자의 정신건강 상태 역시 안 좋았으니 자살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시신은 발견됐을 때 식물에 부

                분적으로 덮여있었는데, 수사관은 이 식물들이 얼마나 오래된 것





                프롤로그    전화 한 통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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