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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최초로 옹호한 인물이라 하겠다. 쇼핑에 필요한 돈을 마련
                        하기 위해 아리스티포스는 철학을 가르치고 학생들에게 수업

                        료를 받았는데, ‘정보에의 자유로운 접근’이라는 개념을 가장
                        먼저 주장했던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은 이 방식을 혐오했다. 에

                        피쿠로스도 이를 용인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가르친 대로
                        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무언가를 절대적으로 얻으려 노

                        력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지 않은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유일하게 행복한 삶은

                        바로 ‘불안하지 않은 삶’이었다.
                          20대 후반 그리스 이드라 섬에 살면서 나는 아리스티포스식

                        의 무차별 쾌락주의가 불러올 수 있는 또 다른 형태의 불안을
                        목격했다. 당시 그곳에 살던 하비브라는 외국인과 종종 어울

                        렸는데, 파리에서 성장기를 보낸 부유한 이란인 하비브는 흔히
                        말하는 ‘금수저’였으나 하도 망나니짓을 하고 다녀 부자 아버

                        지가 돈을 좀 쥐여주고 멀리 쫓아버린 내놓은 자식이었다. 하
                        비브는 시간도 돈도 넘쳐났다. 게다가 얼굴도 잘생겨서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바람
                        직한 행동규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아리스티

                        포스가 말하는 완벽한 삶을 누릴 가능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하비브는 너무나 다양한 선택지에 항상 짓눌려 있었

                        다. 카트리나와 보내는 밤이 더 끝내줄지도 모르는데 왜 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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