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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는 보통 ‘반주자’라고 불린다. 사실 전문 반주자들은 피
아노의 중요성을 잘 알지만 청중이 가수에게 먼저 귀를 기울일 수밖
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반주자라고 불리는 데 순순히 동의한다.
하지만 순수 기악곡에서는 피아노가 이런 불평등한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나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나 《겨울 나그
네》, 슈만의 《시인의 사랑》 같은 가곡 반주도 좋아하지만, 보통은 피
아노가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악 협주를 즐긴다.
피아노 실내악 걸작들은 위대한 피아노 독주곡만큼 훌륭하다. 작
곡가들은 자신의 가장 내밀하고 진취적인 생각을 실내악 작품에 쏟
아붓는다. 그래서 ‘최고의 피아노 작품 100곡’을 선정할 때 반드시
실내악 작품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 포함된 실내악곡은
모두 작곡가의 걸작이며 피아노 독주곡을 능가하는 작품도 많다.
피아노의 역사를 100곡으로 대표한다는 생각은 매력적이지만 쉽
지 않은 도전이었다. 확실히 100곡은 너무 적다. ‘피아노 역사를 대
표하는 5,347곡’쯤은 되어야 합당하겠지만 그랬다가는 독자의 인내
심이 바닥날지도 모른다. 100곡을 추리는 일은 풀기 어려운 퍼즐 같
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마음을 집중할 수 있었다. 학자나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와는 다른 이유로 다른 선택을 했겠지만, 피아
니스트이자 공연 연주자인 나는 다양한 독주곡과 협주곡을 익히고
연습하며 연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들을 선택했다. 연주하
기 어려운 곡과 비교적 쉬운 곡 사이에서 갈림길에 섰을 때 때로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들을 고려해 연주하기 쉬운 곡을 선택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까다롭고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는 곡을 선택하기도
했다. 이런 곡들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피아노의 상상력이 도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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