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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고 연주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낙담한 질버만은 곧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1747년 당시 프로이센 프리드리히 대왕의 궁정 하프시코
드 연주자였던 아들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 Carl Philipp Emanuel Bach
를 만나러 베를린을 방문한 바흐가 처음 피아노를 보았다고 알려진
바와는 차이가 있다. 프리드리히 대왕은 질버만이 제작한 피아노를
여러 대 구입했고 바흐에게 연주해달라고 요청했다. 전해지는 이야
기에 따르면 대왕은 매우 복잡한 주제 몇 소절을 몸소 작곡해 바흐
에게 그 주제를 바탕으로 즉흥연주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어
떤 역사가들은 아들 바흐가 대왕의 요청을 받들어 아버지의 유명한
변주 능력을 뽐내도록 복잡한 주제를 제안했으리라 추측하기도 한
다. 이 주제는 이후 십여 년 동안 작곡한 방대한 푸가와 카논 canon 을
모은 《음악의 헌정》의 기초가 되었다. 그때까지 바흐는 작품을 연주
할 특정 악기보다는 작곡 기술과 솜씨에 더욱 집중했으므로 바흐가
질버만의 피아노를 만난 뒤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도 우리는 바흐의 하프시코드 작품을 하프시코드로 연주하
고 감상하지만, 피아니스트들은 이 작품을 현대 피아노로 연주해도
그만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흐 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피아노가 있었다면 바흐도 피아노로 연주되는 자신의 음악을
듣고 좋아했을 것이며, 피아노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새로운 음악
을 작곡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프시코드에는
없는 서스테인 페달 sustain pedal (음을 지속시키는 페달로, 댐퍼 페달이라고
도 한다–옮긴이)을 실험했을지도 모른다. 바흐는 당대 다른 작곡가
와 마찬가지로 작품을 연주할 악기에 개방적이었으며, 〈푸가의 기
법〉 같은 유명한 작품 일부에서는 악기를 지정하지도 않았다. 하지
28 1부 | 피아노의 초기 역사: 하프시코드에서 피아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