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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겨지는 시기의 막바지에 나타났다. 바흐 직후 음악의 중심은 작곡
가가 느끼는 극적인 감정, 운명과 사투를 벌이는 개인이 경험하는
감각으로 옮겨갔다. 베토벤 시대에는 음악적 솜씨보다 극적인 면이
전면에 등장했지만 바흐 시대에는 솜씨가 여전히 중요했다. 바흐의
건반음악이 이런 솜씨를 보여주는 증거다. 바흐의 음악은 건반악기
를 향한 사랑에 악기 연주에 필요한 요소를 간파한 연주자의 이해를
더한 수년간의 부단한 지적 작업이 이룬 결과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대부분 바흐의 건반음악만 알고 《마태수난
곡》 《요한수난곡》 《b단조 미사》처럼 종교적 텍스트에 바탕을 둔 극
적인 대규모 작품이나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교회 칸타타 작품을 만
날 기회가 거의 없다. 텍스트에 바탕을 두지 않은 바흐의 건반악기
작품에는 가사나 명확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젊은 피아니스트들
은 바흐를 약간 밋밋하게 느끼기도 한다. 바흐는 음악적 선의 내용
과 세부를 살려 훌륭하게 조합하는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
래서 바흐의 건반음악은 매우 ‘바쁘다’. 두서너 개의 음악적 선이 동
시에 움직이면서도 모든 선이 매끄럽게 들려야 하므로 복잡한 운지
법이 필요하다. 리듬은 아주 단순해 보이는데도 리듬감 있는 움직임
이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이어진다.
모차르트의 작품에서는 보통 오른손이 복잡한 선율을 연주하고
왼손은 단순한 저음을 연주한다. 하지만 바흐는 마치 도덕규범처럼
모든 대위법 선율이 공평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연주
자가 음악의 세부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미다. 하나
의 음악적 선 안에서나 서로 다른 선, 때로는 여러 선에서 동시에 움
직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음악적 선을 엮으려면 독창적인 운지
26 1부 | 피아노의 초기 역사: 하프시코드에서 피아노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