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P. 18

의 윗부분인 대뇌반구와 아랫부분인 뇌간과 소뇌를 분리하는 길고

                   가는 틈새가 보인다. 긴 터널을 따라 살금살금 기어가듯이 그 틈새
                   를 더듬어 들어가면 약 7.5cm 깊이에서—현미경의 배율 때문에 백

                   배 더 깊이 느껴지긴 하지만—종양이 발견될 것이다.
                      현미경으로 뇌의 한가운데를 들여다보았다. 인간의 의식과 생

                   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모든 기능이 모여 있는 은밀하고 신비

                   한 곳. 그 위로는 대성당 천장에서 볼 법한 거대한 아치들처럼, 뇌
                   의 심부정맥들—내대뇌정맥과 그 너머의 로젠탈기저정맥, 다음엔

                   정중선에 있는 갈렌대정맥—이 현미경 불빛에 검푸른 빛으로 반짝
                   거리고 있다. 이 부분은 언제나 신경외과 의사들에게 경외심을 불

                   러일으킨다. 이 정맥들은 뇌에서 엄청난 정맥혈을 싣고 몸 구석구
                   석으로 떠난다. 섬세한 외과적 시상詩想이 살아 있는 뇌의 구조가

                   현미경의 아름다운 광학과 맞물려, 이 순간 신경외과 수술 중 가장

                   멋진 순간으로 재탄생한다. 모든 게 잘 굴러간다면 말이다.
                      이 환자의 경우 종양에 접근하는 도중에 잘라야 할 혈관이 몇

                   개 있었다. 시한폭탄을 멈추는 전선을 잘 골라야 하는 것처럼 혈관
                   도 잘 골라야 한다. 잘못 잘랐다간 갑자기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

                   길지 모른다. 이 순간 나는 그동안 쌓아온 의학적 지식과 경험이
                   모조리 사라져 백지 상태가 돼버린 것만 같다. 혈관 하나를 자를

                   때마다 두려움으로 온몸이 떨릴 지경이다. 가슴 아프지만 외과 의

                   사라면 누구나 이런 강렬한 불안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이 불안을 무릅쓰고 계속 가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모든 외과 의사의 마음 한구석엔 공동묘지가 있다     19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