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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오히려 문제를 주는 아이들에 비해 존재감이 약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존재감은 있으나 준호에게로 다가가는 통로가 막혀 존
재감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리스어에 ‘아포리아(Aporia)’라는 단어가 있다. 길이 없거나 통로가
막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누군가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 자체를 나는 그에 대한 ‘아포리아’ 상태
라고 말한다. 이미지가 없으면 존재를 인식하는 통로가 막힌 것과 다름
이 없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존재감은 아이의 이름에 있지 않다. 이미지에서 결정이 난
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오랫동안 각인되고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이는
끊임없이 어른들에게 자기 이미지를 남기려고 발버둥쳐댄다. 심지어 문
제적 이미지를 통해서라도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들이 원하는 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이 아니라 이미지를 기
억해달라는 부탁이다. 존재하고 싶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일 뿐, 문제
를 일으키고 싶은 것이 아니다. 굳이 네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도 너
의 존재함을 기억한다는 믿음을 주지 않는 한 아이는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래야 자신이 살아 있고, 누군가에게 존재함으로 각인되
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상담 중 이런 말을 던졌다.
“존재감이 없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죠.”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를 죽는다는 것과 연결해 아무렇지도 않게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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