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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전 세계 어린이들을 연구한 빅데이터 역시 레고에게 기존보
다 훨씬 크고 단순한 블록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빅데이터가 주는 예측을 뒤엎는 사고의 전환은 사소한 단
서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레고의 마케터들은 각 도시를 돌며 어린
이들을 인터뷰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독일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11살 소년을 만나게 되었다. 소년의 집에는 레고 블록이 가득했고,
그는 스스로를 레고 마니아라고 지칭했다. 인터뷰 말미에 마케터는
소년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네게 가장 소중한 물건을 하나만 보여줄래?”
그러자 소년은 방 밖으로 나갔다가 재빨리 물건 하나를 들고 왔다.
“이거예요.”
소년이 마케터 앞에 내려놓은 것은 한 켤레의 아디다스 운동화였
다. 여기저기 때가 묻고, 굽은 닳을 대로 닳아버린 낡고 오래된 신발
이었다. 소년은 레고 마니아면서 동시에 스케이트보드 타기에도 열
성적이었다.
소년은 신발을 높이 든 채 “이쪽 면은 낡아서 떨어졌고 뒤꿈치는
아예 마모됐죠”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설명만으로도 레고 마케터
들은 어린 소년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소년의 친구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난 이 동네에서 스케
이트보드를 가장 잘 타는 사람이야”라는 것을 드러내는 표현이었다.
낡아빠진 운동화는 일종의 트로피이자 금메달이었던 것이다.
이 순간 마케터들은 그동안 믿어온 가설이 틀렸다고 직감했다. 그
CHAPTER 1 \ 비즈니스 헛발질,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