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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침략에 맞선

                     국민당과 공산당의 항일전쟁



                     국민당이 공산당을 쫓고 있는 와중에도 일본의 중국 침략은 계속되었다.

                   옌안에 주둔하던 공산당 세력의 토벌 임무를 맡고 있던 국민당의 장쉐량(장학
                   량)은 외세 침략보다 공산당 소탕을 우선시하는 장제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
                   었다. 마침 장제스가 옌안(연안)에서 멀지 않은 시안(서안)에 주둔하고 있던 장쉐

                   량의 부대를 찾아오자 장쉐량은 장제스를 강제로 감금하고 ‘ 내전을 중지하고
                   항일투쟁에 나설 것 ’을 요구했다. 장쉐량의 강력한 요구에 국민당은 이를 수

                   용하고 공산당과 다시 한 번 연합하여 항일전쟁에 나섰다.
                     1937년에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난징(남경)이 일본군에 점령당했다. 정부는

                   난민들과 주민들을 남겨둔 채 무한으로 줄행랑쳤고, 무방비로 남겨진 난징
                   주민들은 약 2개월 동안 일본군에 의해 잔혹하게 학살되었다(난징대학살).

                     국민당과 공산당이 힘을 합쳐 일본에 대항하여 싸우기는 했지만 국민당의
                   군대는 일본과의 전쟁에서 대부분 패배해 도망 다니기 바빴다.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민중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항일조직을 만들어 일본군에 저항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마오쩌둥이 이끈 공산당은 산촌의 지형을 활용하여 게릴

                   라전을 펼쳤고, 승리 농민과 화전민들을 공산당군으로 받아들여 병력을 키워
                   나갔다.

                     일본은 중일전쟁을 치르면서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제2차 세계대
                   전에도 참전했다. 1945년에 독일과 이탈리아는 항복했지만 일본은 끝까지 항

                   복하지 않고 대항했다. 일본은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
                   탄을 투하하고 나서야 항복했고, 1945년 8월 15일, 중국과 한국의 침략전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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