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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으로 뇌의 말랑한 백질(신경섬유로 이루어진 하얀 부분 - 옮긴이)을 헤치고

                   더듬어 내려가며 종양을 찾는다. 환자의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흡
                   인기를 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흡인기가 뇌를 뚫은

                   게 아니라 환자의 생각을 뚫은 것이며, 이 흡인기가 뇌 속을 돌아다
                   니는 게 아니라 감정과 이성을 헤집으며 돌아다닌다는 생각. 그러

                   다 보면 기억이니 꿈이니 추억이니 하는 것들조차 다 젤리로 이뤄

                   진 게 틀림없다는 생경한 관념에 사로잡힌다. 그럴 수밖에. 내가 지
                   금 환자의 머릿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젤리와 백질 등의 물질

                   뿐 아닌가. 추상적인 생각도 잠시, 곧 다시 수술대 위의 상황을 인
                   지해야 한다. 여기서 길을 잃고 잘못된 부위를 건드려 무슨 일이라

                   도 생기면 큰일이다. 이제부터는 꽤 예민해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

                   신경외과 의사들이 ‘중요기능구역’(감각, 말하기, 운동 기능을 관장하는 뇌의
                   중요 부분들 - 옮긴이)이라 부르는 곳으로 흡인기가 잘못 들어가기라도

                   하면, 회복실에서 불구가 된 환자를 대면하게 될 테니 말이다.
                      뇌 수술은 위험하다. 나날이 발전한다고 하는 현대 과학기술

                   도 그 위험을 조금밖에 줄이지 못했다. 요즘은 컴퓨터 내비게이션
                   이라 불리는 일종의 뇌 수술용 GPS를 사용하는데, 지구를 공전하

                   는 위성처럼 적외선 카메라들이 환자의 머리를 에워싼다. 이 카메
                   라가 환자 머릿속에 집어넣은 수술 기구의 위치를 찍어서 컴퓨터

                   화면상에 띄워준다. 이로써 수술 직전에 스캔한 뇌 사진을 지도 삼

                   아, 내 수술 기구가 지금 어느 위치에 와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자가 국소마취만 받고 깨어 있는 상태에





                                            모든 외과 의사의 마음 한구석엔 공동묘지가 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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