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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가을에는 체육대회를 열었다. 또한 24시간 사이클 레이스 같은 특별

                  한 이벤트가 끊이지 않았다. 비록 집은 오래되고 낡았지만 시설을 문제 삼
                  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야말로 사람이 좋아 머물게 되는 멋진 곳

                  이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 유학 자금이 끊겼다. 그로 인

                  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버티듯 생활했다. 다

                  행히 셰어하우스 일이 늘어나면서 급여도 늘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
                  다. 물질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지만 함께 웃어주고 힘을 보태주는

                  좋은 친구들 덕분에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그 시절이 어찌나 좋았
                  는지 셰어하우스를 거쳐 간 수십 명의 한국 친구들은 하나같이 귀국하면

                  셰어하우스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흘

                  러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미 셰어하우스의 매력에 푹 빠진
                  상태였다.






                    10년 후, 다시

                    셰어하우스를 꿈꾸다


                    귀국하던 날, 언젠가는 일본에서의 경험을 한국에서도 이어나가고 싶

                  다는 생각을 했다. 자금만 있었다면 당장 도전했을 것이다. 그때의 의지는
                  정말 강렬했다. 하지만 귀국 후에 어렵게 취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생활에 익숙해졌고, 셰어하우스는 점점 기억 속에서 지워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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