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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일이었다. 한국인 방문객이 있으면 견학을 시켜주는 일도 포함되

                        어 있었다. 돈이 필요했던 상황이었고, 좋은 일자리인 듯해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나는 하나를 시키면 두세 개를 할 정도로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런 내
                        모습이 대표의 마음에 들었는지 조금씩 더 많은 일을 함께하게 되었고, 어

                        느덧 나는 셰어하우스 일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두세 시간 정

                        도 일했지만 일이 점점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대표와 함께 셰어하우스를
                        관리하는 일도 하게 되었다. 대표의 차로 여러 지점을 돌며 셰어하우스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표는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며 20대에 처음 경험한 셰어하우스 이야

                        기를 들려주었다. 머나먼 타국에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울

                        리다 보니 너무 즐거워 외로울 새도 없었다고 했다. 대표는 귀국 후에도
                        그 시절이 그리워 함께했던 친구들과 연락하며 지냈다. 그러다 일본의 젊

                        은 친구들도 자신처럼 멋진 경험을 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호주 셰어

                        하우스에서 만난 일본인 아내와 의기투합해 ‘외국인과 함께 살며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글로벌 셰어하우스’를 창업했다.

                           그 당시 일본에서도 셰어하우스 수가 차츰 늘어나고 있었다. 집 안 시

                        설과 서비스를 내세웠던 한국의 셰어하우스와 달리, 일본의 셰어하우스들
                        은 안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티를 내세웠다. 내가 살던 셰어하우스는 외

                        국인과 함께한다는 것과 매달 이벤트를 열어 사람들과의 교류에 힘쓰는
                        것이 특징이었다. 새로운 셰어하우스가 오픈하면 그곳을 방문해 함께 오

                        픈 파티를 즐겼다. 벚꽃이 피면 공원으로 나들이를 갔고, 날씨가 선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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