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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내가 초등학교 5
학년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잠수함 잠망경
으로 쓰려고 만든 유리 프리즘 몇 개를 갖고 오셨다. 우
리는 쉬는 시간에 프리즘을 들여다보며 복도를 어슬렁거
리다 벽에 부딪치고 서로에게 부딪치며 즐거워했다. 우
리는 ‘현실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저렇게 꺾인 가시각
으로 어떻게 길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매료되었
다. 늘 안경을 쓰고 다니는 친구들은 세상을 더 잘 볼까,
아니면 다르게 볼까? 우리 눈 속의 렌즈도 빛을 굴절한
다는 점을 생각해보니, 내가 보는 현실마저 렌즈라는 녀
석이 완전히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어렸을 때 가졌던 이 생각은, 어떤 현실이든 어느
렌즈로 보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는 달라진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었다. 우리는 많은 렌즈를 가지고 태
어난다. 유전적 특질, 성별, 특정한 문화, 가정환경 등이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영향을 끼친다. 나중
에 돌이켜보면, 우리는 아마도 진정한 본성보다는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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