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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다. 갑자기 마음이 불편해진다.
객관적인 지침이 없기 때문에 인간의 선택은 임의성을 띤다.
이건 웃긴 일이다. 솔직히 이거야말로 인간의 실존이 부조리하다
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안타깝지만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세상
의 수많은 사물처럼 인간 역시 미리 정해진 본질을 가진 객체”라
는 생각도 부조리하긴 마찬가지다.
일부 실존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에라 모르겠다, 삶의 모
든 부조리를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어찌 됐든 계속 살아나가
자.” 카뮈는 <시시포스의 신화 The Myth of Sisyphos >라는 독창적인 글에
서 부조리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실존을 그리스 신화에 나
오는 시시포스에 비유했다. 시시포스는 무거운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 인물이다. 바위가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밀어야 한다. 즐거운 파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
만 카뮈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우리는 시시포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만 한다.” 이거야말로 부조리 그 자체다.
실존의 부조리라는 개념을 가장 잘 묘사한 사상가는 희곡 《고
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 》를 집필한 사뮈엘 베케트다. 고전으
로 손꼽히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떠돌이 신세인 블라디미르
(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은 계속 고도를 기다리기만 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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