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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사람을 사람으로 보려고 애썼다. 이오네스코(부조리극

                  으로 유명한 프랑스 극작가—옮긴이)와 희곡 <코뿔소>처럼, 사업
                  가, 운동선수, 점원, 교수들이 목전에서 괴상하게 지껄이고 지방

                  덩어리인 직립한 유인원이 되는 걸 나만 알아챈 것 같았다. 인간
                  의 특징이라 믿게 된 신체와 관습의 저변에 놓인 진화생물학의

                  단단한 뼈대를, 우리의 주장과 상징적 언행의 토대인 삶의 요소

                  들을 처음으로 찌른 것 같았다.
                    보통은 이런 경험이 신념 체계를 흔들면 곤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난 해방감을 느꼈다고 말해야겠다.

                    왜? 인간이 다른 유형의 동물에 ‘불과’하고, 다른 동물처럼 나
                  역시 생명이 유한하니까. 그게 뼛속 깊이 느껴졌다. 이거구나. 사

                  라지는 생이구나.
                    그러자 혈관에서 말이 퐁퐁 솟는 것 같았다. ‘다 별 거 아냐. 다

                  별 거 아냐 다 별 거 아냐.’
                    그게 내 주문이 되었다.

                    더 느긋해진 덕에 나는 내 인생의 가치를 더 고평가하게 되었

                  다. 사실 이것은 경이로운 감정이다. 침팬지의 손을 오래 바라보
                  거나 하늘을 지나 광활한 우주를 올려다보면, 문득 자기 존재가

                  역설적으로 더 미미하면서도 더 의미 있게 변한다. 나는 유한하
                  고 그것은 영원하다는 진실을 믿으면 생기는 장점이겠지. 난 변

                  하지만 무한한 체계의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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