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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유명한 교수가 적극적으로 추천하더라도 말

                    이다. 결국 다른 데로 눈을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왈드는 먹고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자리도 감사하다고 스승에게 말했다. 계속 정리를 증명

                    하고 수학 세미나에 참여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던 것이다.

                      우선 왈드는 부유한 오스트리아인 은행가의 수학 가정교사로 일했
                    다. 카를 슐레징어 Karl Schlesinger라는 이 은행가에게 왈드는 평생 고마워

                    했다. 그러다가 1933년에 오스트리아경기순환연구소Austrian Institute for
                    Business Cycle Research에 연구원으로 고용됐는데, 거기서 아직은 유명하지

                    않던 한 학자의 주목을 받았다. 게임이론의 공동 발명자인 오스카르

                    모르겐슈테른Oskar Morgenstern이라는 경제학자였다. 왈드는 5년 동안
                    모르겐슈테른과 함께 계절에 따른 경제 데이터 변동을 분석했다. 이

                    때 왈드는 처음으로 통계학을 만났다. 학자로서 자신의 앞날을 밝힐

                    분야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전역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었다. 왈드의 지

                    도교수인 멩거는 이렇게 적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의 문화는 주

                    인이 흙과 빛을 주길 거부하는 꽃밭과 같아, 사악한 사람들이 꽃밭 전
                    체를 망가뜨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938년 봄에 결국 재앙이 터

                    졌다.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해버린 것이다. 그해 3월 11일 오스
                    트리아의 지도자인 쿠르트 슈슈니크Kurt Schuschnigg가 축출되고 나치

                    앞잡이가 정치 전면에 나섰다. 몇 시간 만에 독일군 10만 명이 아무런

                    저항 없이 국경을 넘어 진격해왔으며, 3월 15일에는 빈 시내를 행진
                    했다. 그리고 왈드가 어렵던 시절에 은혜를 베풀었던 슐레징어가 바

                    로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I.넷플릭스가취향을읽는법|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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