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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멈추고 정신분석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즈음 나는 아버지처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과학
과목을 좋아하고 또 잘했으며, 의사가 되겠다고 하자 다들 진심으
로 격려해주었다. 그 뒤로 대학교 3학년까지 다른 진로를 고민한
적도 없지만, 사실 의사가 어떤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대학에서 나는 ‘현대정신분석’이라는 수업을 신청했다. 그런
데 알고 보니 애석하게도 페미니즘 계열의 반反프로이트 수업이
었다. 한 학기의 절반이 지나는 동안 나는 소규모 그룹 세미나에서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열 명과 맞서게 되었다. 나는 내 관점을 확신
하던 터라 프로이트가 훌륭한 학자라고 강조하면서 그의 이론이
타당한 이유를 열심히 설명했지만 다섯 번째 수업이 끝날 무렵 아
무도 내 주장을 듣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학생들은 탄탄한
근거를 갖춘 반박 논리와 연구자료를 제시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 문득 내가 논쟁에만 빠져 있지 않는다면 뭔
가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수업이 끝날 무렵 나는 부모와 내가 속한 사회와 문화의 가
치관과 신념을 비롯한 모든 것에 의문을 던졌다. 그리고 왜 의사
가 되기로 했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시에는 부끄러워서 인정
하지 못했지만 사실 의사가 되려고 한 이유는 의사의 삶을 원한 것
이지, 몸의 병을 치료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정작 아픈 사람들을
상대하고 내담자의 가족들에게 심각한 병명을 말해줘야 하는 상
황을 떠올리자 마음이 괴롭고 불안했다. 그런 막중한 책임감이라
20 오늘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