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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과 남북국 시대 심화 공부



            3. 백제 부흥 운동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은 현존하는 백제탑 중 하나로 당나라 장수 소정방
                                이 백제 정벌을 기념하여 1층 탑신에 새긴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
                                國碑銘)’이라는 글로 인해 ‘평제탑’으로 불리었다. 하지만 절터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정림사‘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라 불린다.






                   전문가의 조언

               백제 멸망 후 복신과 도침, 흑치상지 등은 왕자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주류성과 임존성을 거점으로 군
               사를 일으켰습니다. 이들은 한때 200여 성을 회복하고 사비성과 웅진성의 당군을 공격하면서 백제 부
               흥을 꾀하였으나 내부 분열과 백강 전투에서의 패배(663)로 좌절하였습니다.





            4. 신라 하대의 농민 봉기


               • 진성여왕 3년(889)에 나라 안의 여러 주와 군에서 조세와 공물을 바치지 않으니, 창고가 비어 나라의
                 쓰임이 궁핍해졌다. 왕이 세금을 징수하고자 사신을 자주 보내어 독촉하였다. 이로 인해 곳곳에서 도적
                 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원종과 애노 등이 사벌주에서 봉기하였다.

               • 진성여왕 10년(896)에 도적들이 경주의 서남쪽에 나타났는데, 이들은 붉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이때 사
                 람들이 이들을 적고적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주현을 약탈하였으며, 경주 서부의 모량리에서 민가를 약
                 탈하였다.                                               - 삼국사기 -




                   전문가의 조언
               신라 하대에는 중앙정부 내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
               화되었으며 이로 인해 국가 재정도 어려워져 농민에 대한 강압적 수취가 증가하였습니다. 게다가 귀
               족들의 사치와 향락으로 인한 농민 수탈도 강화되어 농민 봉기가 빈번하게 발생하였습니다. 신라 하
               대의 사회 혼란에 대해서 알아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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